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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독서

[추천도서]분노의 포도(존 스타인벡)

은행 그 괴물은 항상 이윤을 내야 해요. 기다려 줄 수가 업다고요. 그러면 죽어 버릴 테니까. 세금도 자꾸 나오는데. 그 괴물은 계속 자라지 못하면 죽어버려요. 계속 같은 크기로 있을 수 없단 말입니다.

썩는 냄새가 일대를 가득 채운다
커피를 태워 배의 연료로 써라. 옥수수를 태워 난방을 해라. 옥수수는 뜨겁게 타니까. 강에 감자를 버리고 강둑에 경비를 세워 굶주린 사람들이 감자를 건져 가지 못하게 해라. 돼지를 죽여 묻어 버려라. 그리고 그 썩은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내버려 둬라.
고발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울음으로 도 다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다른 모든 성공을 뒤엎어 버리는 실패가 있다. 비옥한 땅, 곧게 자라는 나무들, 튼튼한 줄기, 다 익은 열매. 그런데 펠라그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그냥 죽어 갈 수 밖에 없다. 오렌지가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검시관들은 사망 증명서에 사인을 영양실조로 적어넣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일부러 식량을 썩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감자를 바라본다. 도랑 속에서 죽임을 당해 생석회에 가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인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분노의 포도 본문에서]



역사를 보면 국가적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가장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이 오곤 했다.

항상 풍요롭고 자유로운 국가였을 것만 같은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시장실패로 인한 1929년 대공황으로 비롯된 어려움도 역시 영세 농민과 노동자 같은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1929년 대공황과 1930년대 가뭄, 그리고 농산물 가격 유지를 위한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집과 땅을 빼앗긴, 소규모 자작농들과 소작농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고향인 중부 오클라호마에서 서부인 캘리포니아까지 약 2천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과정,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여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일어나는 과정을 담아낸 이 책에서 저자인 존 스타인벡은

끝없이 무한한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금융 자본의 횡포와, 굶어죽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가격 유지를 위해 농산물을 불태우는 농업 자본의 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깎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지주와 자본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생겨나는 가족간의 연대, 이웃들의 연대, 동료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

큰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판단을 내려주는 어머니와, 하루하루 묵묵히 이겨내는 톰 조드를 통해,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운 삶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느낄 수 있으며, 아사 직전에 몰린 사람에게 모유를 먹여서 구한다는 다소 어리둥절한 마지막 장면과, 결말을 알 수 없는 조드 일가의 운명은 오히려 이 책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출간후 90여년이 지난 이 책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존 스타인벡이 이 책에서 민낯을 보여준 자본의 횡포로 인한 빈민들의 고통은 오늘날에도 식량이 부족한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몸소 겪고 있는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