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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독서

[역사 추천도서]조선반역실록(박영규)


"1410년 태종은 마침내 민씨 형제에게 자진 명령을 내렸다. 또 6년 뒤인 1416년엔 그들의 두 아우인 민무휼과 민무회에게도 자진하도록 조치했다. 그들의 처자도 모두 변방으로 내쫓았다. 외척을 경계하고자 태종이 벌인 이 사건은 결국 네 처남의 목숨을 모두 빼앗은 뒤에야 종결되었다."

"심온의 자백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자, 태종은 형을 가해 죽일 수는 없다고 하면서 자진 명령을 내렸다. 이에 심온은 사약을 받고 자진하였다.
이로써 심온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태종은 죄도 없이 죽은 그에게 미안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심온에 대해서는 물론 규례에 정해진 장사는 지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후하게 지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남이의 역모 사건은 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남이가 유자광의 모략에 걸려 억울하게 죽어시다고 믿었다. 때문에 유자광은 연산군 대의 임사홍과 함께 간신의 대명사로 불리었다. 남이의 그 억울함은 350년이 지난 순조 18년에 이르러 비로소 해소되었다."

"이렇듯 정여립 사건은 동인 정권이 밀려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 까닭에 서인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해도에서 정여립의 반역을 고변한 사람들 대다수가 서인 세력이고, 황해도에 율곡의 제자가 많았기 때문에 서인들의 의한 조작설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 듯하다. 또한 정여립이 어리석지 않다면 스스로 왕이 된다거나 전주에서 왕이 난다는 말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기록들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북 세력은 화가 대북당 전체에 미칠 것을 염려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폐모론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이이첨과 허균이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이첨이 대북 당인들과 합세하여 허균을 역적으로 몰아 죽임으로써 대북당에 미칠 화근을 잘라낸 것이다. 결국, 허균은 스스로 만든 술책 때문에 연적으로 몰려 죽은 셈이고, 이이첨과 대북당은 허균을 희생양으로 삼아 흉서 사건의 배후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렇듯 이괄은 1624년 1월 18일에 반란을 일으켜 2월 9일에 도성을 점령하고 2월 10일에 새로운 왕을 세웠으나 3일만인 12일에 정충신과 싸워 패퇴하여 목이 달아났다. 이를 두고 ㅏ람들은 '이괄이 정충신을 앝보고 싸우다 삼일천하로 반란의 깃발을 내렸다'고 하였다."

"이인좌의 난은 단순히 이인좌 한 사람은 중심으로 형성된 반역 사건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영조와 노론세력에 반대하는 소론의 강경 세력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서울, 평안도 세력들을 규합하여 동시다발적으로 군대를 일으킴으로써 영조와 노론 세련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이었다."
[조선반역실록 본문중]



성공하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선구자이며 영웅이지만 실패하면 역적이며 죽음만이 남게 되는 반역!.
이 책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12건의 큰 반역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중 이성계, 이방원, 수양대군은 반역에 성공하여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승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나머지 8건의 반역사건중 민씨형제, 심온은 외척견제를 위해 태종이 꾸며낸 일로 인하여 반역자가 되었고,

허균, 남이, 정여립등은 반대파의 계락 또는 떠도는 소문과 밀고로 반역다운 반역을 해보지도 못하고 역적으로 몰려 죽게된다.

이시애, 이괄, 이인좌는 역모를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여 반역자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었다. 이들에게는 주도적으로 반역을 실행했는지 아니면 반역자로 몰려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반역을 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으로 반역과 역모 사건으로 기록된 역사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조선사회의 권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암투와 모략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