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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독서

[추천도서]리아의 나라(앤 패디먼)

명령받기를 싫어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고
굴복하느니 싸우거나 떠나는 쪽을 선택하고
상대의 수가 많다고 해서 겁먹지 않고
자기네보다 힘이 센 문화일지라도 그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에 넘어가지 않고
그리하여
정복하거나 속이거나 지배하거나 통제하거나 속박하거나 동화시키거나 겁주거나 선심을 쓰려는 자들이 싫어했던 '몽족'
 
유대인보다 강한 결속력을 지닌 유일한 민족인 몽족이 현재 미국에서 30만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중국에서는 묘족이라 부르는 몽족은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한족의 수많은 위협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수천년간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산악 오지에 거주하며 정체성을 유지해 온 민족이다.
 
하지만 19세기초 오랜 박해와, 농토의 축소, 전염병, 조공의 부담 등으로 약 50만명의 몽족은 인도차이나로 이주하게 된다.
 
19세기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프랑스도, 터무니없는 조세체계에 여러번 반란을 일으켰던 몽족을 건드리느니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몽족에게 행정권을 부여하게 되고, 
 
라오스에 정착했던 몽족들은 선조들이 그랬듯이 산악지대에 고립된 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1954년 프랑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한뒤 서명한 제네바 협약에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그중 라오스는 중립국이 되지만
 
인구도 많고 강력했던 인접국들, 미얀마와 태국,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인하여 중립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 중 북베트남 무장조직인 베트민은 라오스 공산세력인 파테트라오를 원조하기 시작하고
 
파테트라오는 반공 정권인 로열 라오와(왕국군)  라오스 정권을 두고 투쟁을 벌이게 된다.
 
이 무렵, 1955년부터 왕국군을 은밀히 훈련시켜온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고
 
제네바 협약에서 '라오스에는 어떠한 외국 군대나 군 관계자도 파견하지 않는다'고 동의했지만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으로 뚫은 보급로인 '호치민 트레일'을 차단하고 싶었던 미국은 겉으로 보기에 합법성을 유지하며 개입하고 싶었고 
 
라오스에 살고 있던 4~50만명의 몽족이 미국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존슨 정부와 닉슨 정부의 지원을 받아 최대 4만명의 대군이 된 몽족 비밀군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미군 조종사를 구하고, 조종사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적진 깊숙히 침입하여 정보를 수입하고, 도로와 교량을 파괴하고, 적의 부대에 전자 송신기를 매설하여 폭격 위치를 알려주고, 호치민 트레일의 보급물자를 가로채는 등 미국이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비용대비 효율이 높았던 몽족, 미군에 비해 60분의 1도 안되는 돈을 받은, 즉 목숨값이 쌌던 몽족에 대해 미국은 상당히 만족하게 된다.
 
결국 라오스 왕국군의 몽족은 파테트라오 반군간의 대부분의 싸움을 맡아 하게 되지만
 
1975년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서, 미군을 대신해 라오스에서 공산 세력과 싸우던 몽족은 순식간에 갈곳을 잃게 된다.

대부분의 몽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태국으로 국경을 넘어가게 되고, 이들은 난민이 된다.
 
이러한 난민중 일부인 약 18만명이 미국에 받아들여지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1세대 몽족이 되고, 이들의 후손들이 지금의 미국의 몽족들이다.
 
 
 
 
이 책은 1세대 몽족의 한 가정에서 1982년에 태어난 리아라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리아는 생후 3개월에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을 일으킨다.
 
그후 리아는 미국의 의료기관에 의해 생활보호 대상자로써 무료 치료를 받기 시작하게 되는데
 
샤머니즘을 결합한 전통적인 몽족의 치료법에 익숙한 리아의 부모가
 
제대로 된 통역조차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않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의해서 리아를 치료하게 된다.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했지만 리아의 부모는 의사들의 지시사항을 고의 또는 실수로 어기게 되고
 
그로 인하여 리아 부모는 아이의 학대 혐의를 받게되고 리아는 10개월간 위탁가정에 보내지기도 하지만

수십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리아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결국 리아는 식물인간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식물인간의 상태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리아는 몽족의 방식대로 부모의 정성스런 간호를 받게 되고,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미국 의사들의 예상과달리,
 
이 책의 15주년 판본이 다시 출간되는 2012년까지 살고 있다.
 


과연 리아에게 필요한 치료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리아를 이렇게 악화시켰을까?
에 대해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이 책을 통해
 
몽족의 역사와 라오스 비밀전쟁에 대해 알게 되며
 
세계에서도 가장 이질적이었던 몽족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충돌한 리아의 치료 과정을 통해
환자의 문화나 민족을 전혀 고려하지 않던 의사들이 이제는 환자의 민족적 배경과 치료 문화를 이해하고 편견이 없이 환자의 말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된 리아의 사례를 알게 되며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정이나 연민보다 공감이 어렵다'는 이 책에서의 문구가 새삼 기억나게 만드는 책이다.
 

[리아의 나라 본문중]
생활보호대상자가 된 것을 비난하는 것만큼 몽족을 화나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몽족이라면 누구나 '약속'이란 것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그것을 라오스 내전당시 CIA 요원들이 서면 또는 구두로 했던 계약으로, 미국인을 위해 싸워주면 인민군이 전쟁에서 이길 경우 불리해질 몽족을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이었다. 몽족은 불시착한 미국인 조종사를 목숨 걸고 구했고 미국인의 폭격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을 감내하며 '미국의 전쟁'을 도왔기 때문에 살던 나라를 탈출해 미국에 오면 영웅 대접을 받으리라 기대했다. 몽족 대부분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 배신은 미국 비행기가 롱티엥에서 장교들만 구출해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버리고 간 일이었다. 두 번째 배신은 태국 난민 캠프에서 미국으로 오고 싶어 한 몽족이 전부 답아들여지지 않은 일이었다. 세번째 배신은 자신들이 참전 용사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 번째 배신은 미국인들한테 "복지 기금 잡아먹는다."라는 비난을 듣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 배신은 그들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중단해야 된다는 주장을 듣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