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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독서

[추천도서]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줄리언 반스)

이 책은 줄리언 반스라는 영국인 소설가가 19세기와 20세기초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자유롭게 저자의 생각을 밝힌 글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작가의 사생활, 작품의 해설, 시대적 상황, 문학적 감상등을 자신의 미술사 지식과 함께 보여준다.

모든것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함에 있어서도

미술 작품에 대한 기본 적인 이해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해
시대적 상황등을
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미술작품을 관람 하는 것보다는 한층 더 깊이있게 관람이 가능할 것이다

지식을 바탕으로 미술작품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한 이 책은 그러한 면에서 모범을 보여줬다고 할만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나면 책에 삽입된 미술 작품들에 관한 한 그림이 품고 있는 의도나 배경을 어느 정도 알게 되는데

‘줄리언 반스와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 온다!‘ 는 말이 과장된 문구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작품 관람의 본질과 우리가 미술관람을 하는 이유는 지식 또는 그것의 과시가 아니라 각자의 느낌, 생각, 감정의 향유일 것이다.

 


 [책 본문중]
우리가 명화 한 편을 감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10초나 30초? 아니면 꼬박 2분? 중요한 화가의 전시회에는 300점을 거는 것이 표준이 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런 곳에서는 좋은 그림 한 점을 감상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일까? 그림 한 점에 2분을 쓴다면 300점을 모두 보기까지 열 시간이 걸린다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판탱라투르 '식탁모서리'

식탁모서리의 왼쪽은 판탱라투르의 네 그림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랭보와 베를렌이 나란히 앉아 있어서 그렇다. 아름다운 소년 랭보는 수염을 기른 사람들 틈에서 아기 천사처럼 턱을 괴고 우리의 왼쪽 어깨 너머를 바라본다. 너무 이르게 머리가 벗어진 베를렌은 얼굴 각도가 옆모습과 앞모습의 중간쯤으로 긴장되어 있는 듯하고, 오른손으로는 곧 삼켜질 포도주가 든 잔을 잡고 있다. 이 둘은 서른 네 사람 중 가장 친하고 악명 높은 커플인데도 애인이라는 티를 내기는커녕 서로 마주 보지도 않는다. 이런 그림을 보면 우리는 유명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오늘날의 관람객은 루이 코르디에, 자카리 아스트뤼크, 오토 숄데러, 앙리안 라스쿠 같은 이들에게 슬쩍 한 번 연민의 눈길을 보낼 뿐, 그 이상 관심을 두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 연민의 마음에는 딱히 죄의식은 아닌, 불편한 감정이 섞여 있다. 우리가 그들을 잊어버린 후대라서 그렇다.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부분장면

안녕하세요 쿠르베씨(1854)를 보면 탁 트인 풍경 속에 쿠르베를 내려주고 가는 마차가 오른쪽에 있고,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와 브뤼야의 하인 칼라스가 그를 맞이하고 있다. 브뤼야와 칼라스중 누가 더 공손해 보이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브뤼야는 모자를 벗으며 쿠르베를 맞이하는데, 쿠르베의 모자는 이미 손에 들려 있다. 자유분방한 화가로서 그런 모습으로 다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브뤼야는 또한 그를 맞이하며 고개를 떨구는 반면, 그는 고개를 바짝 쳐들어 추궁이라도 하듯 수염을 들이댄다. 그것으로 부족했늦지, 쿠르베는 그의 후원자보다 두 배는 더 큰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상황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후원자가 예술가를 선발한다기 보다, 예술가가 상대방이 후원자로 적합한지 가늠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이 그림은 '천재를 맞이하는 부자'라는 풍자 섞인 별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화가는 기껏해야 방관자로서 농부들 가운데 섞여 있고, 그림의 후원자나 기부자는 성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댄 채 무릎을 구부리는 모습으로 묘사되던 시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림인가?

발로통 '거짓말'

내 작문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불가사의한 거짓말을 둘러싼 글을 제출했을 때, 문득 발로통의 그림이 생각나서 학생들에게 그것에 관해 말해준 적이 있다. 배경에는 노랑과 분홍 줄무늬 벽이 있고 전경에는 블로 같은 짙은 빨강 계통의 가구가 놓인 19세기 말엽의 실내에서 한 쌍의 남녀가 소파 위에 엉켜 붙어 있다. 선명한 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곡선이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자의 다리 사이에 묻혀 있다. 여자는 남자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고 있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남자의 얼굴에 자기만족의 웃음이 어려 있고 왼쪽 발끝이 쫑긋 들린 경쾌한 자세로 알 수 있는 순진함으로 보아, 거짓말의 주체는 여자임이 분명하다. 여자가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만 남는다. "사랑해요"라는 그 고전적인 거짓말일까? 아니면 여자의 드레스가 불룩한 것으로 미루어 또 다른 고전, "물론 당신 아기죠"라는 말일까?

뷔야르 ' 재세례파:피에르 보나르'

보나르의 화재는 이따금씩 지나치게 유혹적이어서 문제다. 프랑스 가정의 실내, 바깥은 덥고 안은 께느른한 분위기, 음식, 과일, 배가 뿔룩한 물병, 열려 있는 문, 두툼한 라디에이터, 호소하는 듯한 고양이- 이러한 소재들이 담긴 그림들은 영국에서 프랑스를 오가는 여행사가 제공하는, 비현실적이라리만치 이상적인 최고의 임대 별장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