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쥘 미슐레가 명명하고, 부르크하르트가 널리 확신시킨 르네상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로마인들과 그 너머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적, 도덕적 가치들의 회복과 부흥을 기반으로 예술, 철학, 인문학등이 중세시대의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현상을 말한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도나텔로, 부르넬레스키, 메디치 가문등에 대하여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텐데 이 모든 사람들이 거의 동시대에 인구 약 5만명에 불과하던 피렌체에서 태어나 활동하던 인물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르네상스의 기원이 된 피렌체에는 이렇게 위대한 유산으로 후대에 널리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수 많은 숨은 공신들이 있었는데 '103인 명사들의 생애'라는 책을 남긴 베스파시아노 피오렌티노가 그 중 한명 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생소한 베스파시아노라는 서적상을 중심으로 15세기의 약 60여년의 기간동안 피렌체의 인문학을 꽃피우게 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직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인 15세기 초반에는 책을 제작함에 있어 필경사가 원본을 배껴 적고, 그 위에 아름다운 채식 삽화를 그려놓은 후, 각종 장식이나 무늬로 제본을 하여 완성하는 시기였고
그 당시 서적상은 단순히 책의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까지 책임지는 역할이었는데, 양피지를 구입하고, 가장 오류가 적은 모본을 구하고, 필경사와 채식사를 고용하여 책을 필사하고 내용과 연관된 삽화와 무늬를 첨가한후 각종 장식을 부착하여 제본을 한후에야 완성되는 책 한권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았는데
특히 원본을 선정하는 능력은(필사본만이 존재하던 당시 여러번의 필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각 필사본마다 오류가 존재) 오류를 판단할 수 있는 식견과, 당시 최상류층이었던 고객들의 지적인 갈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어야 했기에 서적상은 필경사, 학자등과 함께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1433년 혈혈단신 열한살의 나이로 서점에서 일하게 된 지 불과 몇 년만에 상업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십수년만에 서적상의 왕으로 불리우게 된 베스파시아노는 물론 개인적인 출중한 능력을 타고 났겠지만
무엇보다도 15세기 피렌체라는 시공간이었기에 그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15세기 유럽은 늘어가는 식자층과 문해력을 갖춘 일반인의 증가와 고대인을 모방하여 도서관을 건립하던 군주와 유력인들의 증가로 역사상 유래없는 필사본의 황금기였고 피렌체는 그 중심도시였기 때문이다.
당시 베스파시아노에게 서적을 주문하던 고객들은 왕이나 귀족, 교황, 고위 성직자등 고위층이었고 이들은 당연히 이탈리아의 정치적 소용돌의의 주인공들이었다. 즉 서적을 구매하고 찾던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어갔던 사람들이었는데
베스파시아노의 서점에서 필사본 주문과 제작을 따라가다 보면 고대 인문학의 부흥, 동로마제국의 멸망과 인쇄술의 발명과 전파, 교황의 교체와 도시국가들의 합종연횡과 전쟁등 숨가쁘게 돌아갔던 15세기 피렌체와 이탈리아 역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완벽한 이야기 솜씨로 인하여 우리는 그 당시의 피렌체로의 여행을 떠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봉건 영주들의 무관심, 수도사들의 탐욕과 태만, 홍수, 화재, 벌레, 파피루스와 양피지라는 과거 기록 보관물 재료의 한계, 수많은 전쟁과 약탈, 필사본 제작의 어려움등을 생각해 보면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샤를마뉴와 그의 필사자들 그리고 1453년까지 이어졌던 동로마제국으로 인하여 보존할 수 있게된 역사적 배경,
코시모 메디치와 나폴리 국왕 알폰소, 교황 니골라우스 5세등 천재의 작품들을 공공 재산으로 만들기 위해 도서관을 건립하고 책을 수집한 사람들,
포조, 베사리온 추기경과 같이 유럽 각지를 다니며 수도원 지하에서 썩어가는 고대의 보물를 찾았던 필사본 사냥꾼들,
그리고 베스파시아노와 같은 서적상과 수 많은 이름모를 필경사, 채식사들
이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지혜를 지속시겨주고 우리에게까지 전달시켜줄 수 있게 해준 그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또한 상기시켜 준다.
[피렌체 서점 이야기 본문에서]
고대 문헌이 그토록 많이 소실된 것이 봉견 영주들의 무관심과 비양심적인 수도사들의 탐욕과 태만 탓만은 아니었더. 홍수와 화재 또는 쥐, 쇠파리 좀벌레의 치명적 식욕이 야기한 불가피하고 무차별적인 파괴 탓만도 아니었다. 이것들도 모두 소실에 일조했지만 그렇게 극소수의 문헌들만 전해지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테크놀로지, 다시 말해 책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샤를마뉴는 열성적으로 문헌을 장려했고 앨퀸은 일종의 교육부 장관 역할을 했다. 비록 본인은 문맹이었지만 샤를마뉴는 학문과 지혜에 커다란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새로 입수한 서적들을 보관할 왕립도서관을 설립하고, 신학, 역사, 자연과학 등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필사본 제작을 주재했으며, 수도원과 개인들이 책을 입수하도록 장려했다. 그렇게 하면서 샤를마뉴와 그의 팔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소멸해버렸을 많은 작품들을 보존해 후세에 남겼다.
중세에 이르자 콘스탄티노플 학자들은 대다히 성실하고 엄밀한 자세로 고대 그리스 문학의 고전들을 수습하고 보존하는 임무에 착수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실상 모든 그리스 고전은 8세기와 9세기에 만들어진 비잔티움 필사본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피렌체인들도 공공도서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목적을 위해 코시모는 니콜리 사후 그의 코덱스 컬렉션을 곧장 입수해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산 로렌초 교회 근처 니콜리의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자신의 궁전으로 실어왔다. 1441년에는 700플로린에 달하는 니콜리의 상당한 빚을 대신 갚음으로써 그의 유산 가운데 장서들을 직접 사들였다. 니콜리의 컬렉션을 산 마르코 수도원에 기증하면서 코시모는 장서들을 수용할 도서관의 건립 비용과 더불어 그 필사본의 제본 비용도 대기로 약속했다.
고대의 작가들은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게 비춰왔다. 이러한 가르침. 이 눈부신 빛줄기야말로 베스파시아노가 자신의 필사본으로 그 시대에 어둠에 시달리는 땅에 퍼뜨리고 싶어한 것이었다.
마네티는 지상의 삶은 누리고 상찬해야 할 것이지 그 유일한 보답인 내세에서의 구원과 안식만 기대하며 경멸하고 음울하게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피치노는 마네티의 관념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그는 인간의 상상력이 그를 어엿한 창조자로 만든다고 믿었다.
다음 몇 년에 걸쳐서 여러 주교, 학자, 교사, 의사, 수도사 들이 인쇄술을 '거룩한 기예', '새롭고 신성시하다시피 한 글쓰기 방식', ' 사상 유례없는 기적', 이라고 단언하게 된다.
지성사가 제임스 핸킨스와 에이다 파머는 15세기 학문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은 플라톤 저작들의 점진적 복구와 라틴어 번역었다고 단언한다" 이 수십년에 걸친 가업에는 마누엘 그리솔로라스,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베사리온 추기경 같은 동방 현자들의 피렌체 도래, 코시모 데 메디치의 개입, 레오나르도 브루니,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학술적 노력 등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산 야코포 디 리폴리에서 인쇄기가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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