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제왕들의 역사인 본기本紀와 봉건 제후들의 이야기인 세가世家, 그리고 왕과 제후들을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사적을 기록한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기 위해 황실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나 문서를 열람하거나 직접 답사하였고 심지어 해당 인물을 만나거나 인물들의 고항을 방문하여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자료를 수집하었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많은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철저히 검토하고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하였고, 불분명한 사건들은 믿을 만한 것은 믿는 대로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나는 대로 전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제한된 사료를 추적하였다.
이중 열전 70편은 주나라 붕괴후 등장한 50개 제후국 가운데 끝까지 남은 전국 칠웅(진, 한, 위, 제, 초 연, 조)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하며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사기열전 70편은 위인전과 비슷하지만 각 인물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들로 내용이 압축되어 있고 한때의 권력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색다른 점이다. 인간의 부귀영화는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사마천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열전속의 인물들이 오늘날에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우리에게 삶의 교훈과 지혜를 주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정치체제나 경제여건, 기술발전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어디서나 항상 존재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행동양식과 본능을 이 책에서 꾸밈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책의 내용중 아래의 소 제목은 명언집으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만한 것을 골라 보았는데 오늘날에도 와닿는 내용이어서 기억해두면 좋을것 같다.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요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는 행동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앖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정치를 맡자 보잘것 없는 제나라가 바닷가에 있는 이점을 살려 규역을 통해 재물을 쌓아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백성과 더불어 좋고 나쁜 것을 나누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구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이 굳게 결속하고, 사유가 펄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제나라 때의 양저가 군영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긴 장가의 목을 베고 전군의 본보기로 삼은 일
(사람은 말과 생김새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
담대멸명은 무성 사람으로 자는 자우이고 공자보다 서른 아홉 살 아래이다.
그는 매우 못생겨서 공자는 그가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었다. 그러나 그는 가르침을 받으뒤 물러나면 덕행을 닦는 이애 힘쓰고, 길을 갈 때는 절대로 사잇길로 가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경대부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가 남쪽으로 강수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를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나 되었다. 그는 제자들에거 물건을 주고받는 것과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도리를 이치에 맞게 가르쳤기 때문에 제후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공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령게 탄식했다. "나는 말 잘 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었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었다."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공자는 말했다.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예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
상군이 진나라 효공에게 등용되기 위하여 효공의 관심사에 대하여 유세한 일
(지혜는 나이와 관계없다.)
12살이었던 감라가 조나라의 사신으로 가서 세치 혀로 하간의 다섯개 성을 얻고, 이후 조나라가 연나라의 성 서른개를 빼앗아 열한개를 진나라에 바치게한 일
(천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진나라 소왕 7년 진나라의 재상 양후가 위나라의 대량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을 때 위나라 대부 수고의 말을 듣고 위험한 포위를 푼 일
(노름꾼과 술 파는 자라도 어질면 찾아가라.)
조나라의 평원군이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일
(충신이 반역자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이다.)
연나라의 악의는 제나라에 머물러 각지를 공격한지 5년만에 제나라의 성 70여개를 항복하여 연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와 즉목만은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연나라 소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를 이었는데, 그가 바로 혜왕이다. 혜왕은 태자 때부터 언제나 악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혜왕이 즉위하자 제나라 전단은 이 사실을 알고 연나라로 첩자를 보내 이러한 말을 퍼뜨렸다.
"재나라 성 가운데 항복하지 않은 곳은 두 곳 뿐이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 성을 빨리 치지 않는 까닭은 악의가 새로 즉위한 연나라 왕과 사이가 나빠 잔쟁을 질질 끌면서 섀나라에 머물러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나라는 연나라에서 다른 장수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있다고 한다."
연나라 혜왕은 전부터 악의를 의심하고 있던 차에 제나라 첩자의 말을 듣고는 기겸을 대신 장군으로 삼아 보내고 악의를 볼러들었다.
악의는 연나라 혜왕이 자기를 탐탁지 않게 여겨 다른 사람으로 교체시킨 줄을 알고 죽게 될까 봐 두려워서 서쪽으로 달아나 조나라에 투항했다.
(세금이 공평하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평원군은 조사가 현명하다고 여겨 왕에게 추천했다. 왕이 그를 등용하여 나라의 세금을 관리하게 하자, 세금이 매우 공평하게 거둬들여져 백성은 부유해졌고 창고는 가득 차게 되었다.
(쥐구명 안의 싸움에서는 용감한 쥐가 이긴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기 위해 연어에 주둔했다. 왕이 조사를 불러서 연어를 구할 수 이시는 방법을 묻자 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길은 멀고 험한 데다 지역이 좁으므로 그곳에서 싸운다는 것은 쥐 두마리가 구멍속에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용감한 장군이 이길 것입니다."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 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맛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차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원망하는 마음은 반란의 불씨가 된다.)
항우가 진나라를 쳐 멸망시킬 당시 항우의 뜻을 저버리고 군대를 출동시리지 않은 전영과 진여가 항우에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일
(정상에 오른 자에게는 내리막길만이 있을 뿐이다.)
한나라 효문제 시기 승상이던 장창에 대한 이야기
(구태여 결백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한나라 경제때 어사대부 었던 직불의는 모함을 받아도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지 않았다.
직불의는 노자의 학설을 배웠으므로 자기 직책에서 일을 처리할 때 전임자처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관리로서의 자기 치적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워했고, 명성을 세우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장자라고 칭송받았다.
(그가 부리는 사람을 보고, 사귀는 사람을 보라.)
전인과 임안의 발탁에서 스스로 파멸을 초래하는 이야기.
대체로 달이 차면 기울고, 사물은 성하면 쇠락하는 것이 세상 이치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알고 뒤로 물러설 줄 모르며, 오래도록 부귀의 형세에있으면 화가 쌓여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범려는 월나라를 떠났고, 물러나 관직과 질위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은 후세까지 전해져 만세에 이르도록 잊혀지지 않으니 어찌 그를 따를 수 있겠는가! 뒤에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이 점을 삼가고 경계하기 바란다.
(때가 다르면 할 일도 다르다.)
학궁에 모인 박사와 선생이 서로 의견을 펴던 끝에 비난에 대한 동방삭의 답변
"장의와 소진이 살던 때는 주나라 왕실이 크게 무너져 제후들이 조회에 들지 않고 힘으로 정치를 하고 서로 무력으로 침략하고 열두 나라로 겸병되었으나 세력의 우열이 가려지지 않았소. 인재를 얻는 나라는 부강해지고 인재를 잃은 나라는 멸망했소. 그래서 유세가들의 말이 받아들여지고 하려던 것이 실행되었으며 자신은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은택은 후세에까지 미쳐 자손들도 길이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오.(중략)
진실로 제 몸을 닦을 수만 있다면 어찌 영달하지 맛 못할까 봐 걱정하겠소! 강태공은 몸소 인의를 실천하다가 일흔두 살에야 주나라 문왕을 만나 자신의 견해를 실행할 수 있게 되었고, 제나라에 봉해져 700년 동안인 끊어지지 않았소. 이것이 밤낮으로 부지런히 학문을 닦으며 도를 실처느기를 멈추지 안는 까닭이요. 지금 시대의 차사들은 비록 이 시대에 쓰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홀로 우뚝 서고 처신하면서 위로는 허유를 보고 아래로는 접어를 살피며, 계책은 범려와 같고 충성심은 오자서와 합치되지만 천하가 태평한 때에는 자신을 닦으면서 바르게 있는 것이오
(부유해지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다.)
대체로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은 생업을 다스리는 길이다. 그렇지만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한 기회를 활용했다. 밭에서 농사짓는 것은 재물을 모으는 데에는 졸렬한 방법이지만, 진나라의 양씨는 이것으로 주에서 제일가는 부호가 되었다. 무덤을 파서 보물을 훔치는 일은 나쁜 일이지만 전숙은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일어섰다. 도박은 나쁜 놀이이지만 환발은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고, 행상은 남자에게믄 천한 일이지만 옹낙성은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다. 연지를 파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옹백은 그것으로 천금을 얻었고 술장사는 하찮은 일이지만 옹백은 그것으로 천만금을 얻었으며, 칼을 가는 것은 보잘것 없는 기술이지만 질씨는 그것으로써 제후들처럼 반찬 솥을 늘어놓고 식사를 했다. 양의 위를 삶아 말려 파는 것은 단순하고 하찮은 일이지만 탁씨는 그것으로 기마행렬을 거느리고 다녔다. 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대단치 않은 의술이지만 장리는 그것으로써 종을 쳐서 하인을 부르게 되었다. 이는 모두 성실하게한 가지 일에 노력한 결과이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부유해지는 데에는 정해진 사업이 없고, 재물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에 맞먹고, 거만금을 가진 부자는 왕과 즐거움을 같이한다. 그들이야말로 어찌 이른바 소봉이라고 할 만한 자들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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