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로 부르는 청조는 무엇이든지 중국이 이익이 될 만하고 그것으로써 오래 누릴 수 있는 일인 줄 알기만 할 때는 억지로 빼앗아 와서라도 이를 지켜 냈고, 만약 본래로부터있던 좋은 제도가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에 유용할 때는 비록 그 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손 치더라도 주저 없이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삼대 이래 현명한 제왕들의 법도와 역대 국가들의 가졌던 고유한 원칙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참으로 오랑캐를 배척하려거든 중국의 발달된 법제를 알뜰하게 배울 것이요, 자기 나라의 무딘 습속을 바꿔 밭 갈고 누에 치고 질그릇 굽고 쇠 녹이는 야장이 일을 일을 비롯하여 공업을 고루 보급하고 장사의 혜택을 넓게 하는데 이르기까지 모두가 배우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열 가지를 배울 때에 이녁은 백 가지를 배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나라 백성에게 이익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나라 백성들의 튼튼한 준비 앞에 저들의 굳센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가 맥을 쓰지 못하게 될 때에야만 비로소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록 안으로는 삼국을 통일했지만 그 강토와 무력은 고구려의 강대함에 멀리 미치지 못하였거늘 후세의 곡학자들은 평양의 옛 명칭에만 마음이 쏠려서 함부로 중국의 사전에만 등을 대고는 수당의 구적에 정신이 팔려 여기가 패수다 여기가 평양이다 당토 않은 수작들을 하니 이 성을 안시성이니 봉황성이니 하는 것도 무슨 재주로 변증해 낼 것인가?"
" 우리나라 벼슬하는 양반들은 일반 허드렛일은 알려고도 않으려는 버릇들이 있어 옛날 어디서든 여럿이들 모인 자리에서 누가 콩을 말에게 좀 더 주라는 말을 한마디 했다가 사람이 좀스럽다고 그만 벼슬자리가 막힌 일까지 있었다. 근자에 어떤 학자는 언제나 말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말에 대한 지식은 옛날 백락이나 다를 바 없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양고기 잘 굽는 도위가 있다더니 지금 세상에는 말 잘 다루는 학자가 있다" 고 비방하여 까다롭기가 이와 같다. 한 나라의 큰 정책으로는 고려하지 않고 이것을 수치로 여기고 하인들의 손에만 맡겨 두고 있으니, 비록 직책은 감목이라고 하지마는 사람은 벼슬에 있는 사람으로서 목마의 지식이라고는 꼬물도 없다. 이것은 능력이 없다기보다도 배우기를 사리기 때문이니, 이런 것을 들여 관원들이 목마에 무식하다고 하는 것이다"
[열하일기 본문중]
이 책은 청나라 건륭 황제의 만수절을 축하하는 조선의 사신 일행이 압록강을 넘어 북경을 지나 열하까지의 약 75일간 3000리 여정을 담은 책으로, 여행 과정에서 본 청나라의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그곳의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묘사하고, 그와 관계가 있거나 비교가 될만한 우리나라의 역사, 사회문화, 경제, 철학등과 세태를 풍자하는 잘막한 콩트까지 포함된 방대한 분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재치 있게 풀어 쓴 책이다.
박지원은 청나라와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상행위와 무역을 장려하고 능력과 실력에 따른 균등한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는데(북학파), 이러한 생각은 열하일기에서 전반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이 책에서는 여행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저자의 지식과 생각을 결부하여 표현하는데, 결국 이 책에서 가장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핵심 주제는 고달픈 백성의 삶에 대한 고민과 국가의 부강이다.
망한지 130년이나 지난 명나라의 연호를 쓰고 있는 조선 사대부들과 그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우리보다 앞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사용중인 청나라를 오랑캐의 것이라 배척하는 조선 양반들의 사조를 비판하며,
과거 요서지방까지 뻗어나갔던 고구려의 옛 영토와 그때의 강성함을 그리워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축소하려는 중국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을 비판하며,
하나의 사원이 10만 병력보다 낫다는 기치아래 상대를 존중하는 평화적인 외교를 펼치는 청나라의 외교정책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100년이상의 평화를 유지하며 태쳥성대를 누리고 있는 청나라의 실용적인 생각을 읽어낸다.
연암 박지원의 해박한 지식, 선진적 사상, 해학과 풍자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세계최대의 기행문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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