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찮은 독서

[과학 추천도서]말레이 제도(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월리스 라인(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1858년 6월 찰스 다윈은 지구 반대편인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인 트르나데 섬에 있던 무명의 박물학자로부터 짧은 논문을 한편 받는다. 이 논문을 읽은 다윈은 '나는 이런 우연의 일치를 처음 보네'라고 놀라며 자신의 논문의 서문으로 써도 될 정도라고 평가하면서 이 논문을 찰스 라이엘과 조셉 후커 박사에게 보낸다. 라이엘과 후커 박사는 이 논문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친구인 찰스 다윈이 오랜 기간의 연구 결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우려하였고, 7월 1일 런던 린네협회에 다윈의 논문과 편지로 받은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한다.

린네 협회에서 라이엘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독특한 종의 출현과 영속을 설명하는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동시에 정립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종의 기원이라는 중요한 연구에 있어서 공평하게 독창적인 학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담고 있는 이 논문은 두명의 당사자 없이 발표되었으며, 다윈의 논문과 함께 제출된 논문은 1858년 2월 작성된 러셀 월리스의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라는 논문이었다.

하지만 해당 논문은 발표당시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이듬해인 1859년 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초판 8천부가 발행 초기에 팔리고 학계와 종교계등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진화론의 주인공 자리는 다윈이 홀로 독차지하게 되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은 월리스의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월리스는 다윈을 존경하고 진화론의 선구자임을 인정하였으며, 다윈 또한 월리스를 보살피고 도와주었고 그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였으니 둘의 관계는 진정한 학문적 동반자였다고 할 만 하다.

월리스는 이 책을 찰스 다윈에게 헌정하는데, '개인적 호감과 우정의 징표로서, 또한 당신의 천재성과 업적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하고자 이 책을 헌정합니다' 라는 책의 첫 문구를 보면서 두 천재 과학자의 뜨거운 우정과 두 사람의 서로에게 진심어린 존경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월리스의 첫 작품으로써 1854년 4월 20일부터 1862년 2월 20일까지 약 8년동안 말레이 제도 즉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채집과 탐사활동을 통하여 관찰한 내용과 의견을 기록한 독특한 기행문으로써 월리스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월리스는 책의 서두에서 최대한 정확하게 서술하려고 최선을 다하였으며, 이번 탐사의 주 목표를 개인적인 채집과 더불어 아마추어 자연사학자에게 공급할 자연사 표본을 얻는 것(특히 극락조)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8년간의 탐사를 통하여 모두 125,660점의 표본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라한 방대한 채집물은 월리스의 8년간의 노고를 증명한다



월리스는 이 책에서 말레이제도 전역을 동물상과 거류민의 특징에 따라 다섯 지역으로 분류하였고
1. 인도말레이 군 : 말레이 반도, 싱가포르 섬, 보르네오 섬, 자와 섬, 수마트라 섬
2. 티모르 군 : 티므로 섬, 플로레스 섬, 숨바와 섬, 롬복 섬, 그리고 작은 섬 몇 곳
3. 술라웨시 군 : 술라 제도와 부퉁 섬
4. 말루쿠 군 : 부루 섬, 스람 섬, 바찬 섬, 할마헤라 섬, 모로타이 섬, 그리고 작은 섬인 트르나테 섬, 티도레 섬, 마키안 섬, 카요아 제도, 암본 섬, 반다 제도, 고롱 제도, 와투벨라 제도
5. 파푸아 군 : 뉴기니와 아루제도, 미솔 섬, 살라와티 섬, 와이게오섬 등 몇 개의 섬
(카이 제도는 민족학적 이유로 이 군에서 다루지만, 동물학적이나 지리학적으로는 말루쿠 군에 속한다)

분류된 각 지역의 수많은 섬들을 탐사하게 되는데, 방문하기 위한 항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원할한 탐사를 위하여 각 지역의 지배자들과 벌이는 협상과정, 채집에 알맞은 장소를 찾고 각종 곤충과 조류를 채집하는 과정,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모습과 특징과 각종제도, 각 지역에서 채집한 동식물의 특징 및 기원과 인근 지역과의 연관성, 그리고 각 지역의 환경과 지질학적 분석등을 담고 있다.


8년간의 탐사를 통해서 월리스는 약 100여종의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명명하였으며, 특히 우리가 월리스 선이라 부르는 보르네오 섬과 술라웨시 섬을 가르고 발리 섬과 롬복 섬을 가르는 가상의 선을 기준으로 한쪽은 아시아에 사는 동물들이 분포하고 다른 한쪽은 오세아니아에 사는 동물이 분포함을 발견하여 구분하였고, 확연하게 다른 민족인 말레이인과 파푸아인을 구분하는 민족학적 구분선 또한 발견하여 구분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우리는 월리스의 탁월한 관찰력과 식견, 뛰어난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

말레이제도의 각 지역을 월리스와 함께 가다 보면 어느새 170여년전의 인도네시의 여러 섬에서 그 당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당시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그래서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낸 논문(편지)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가 실려 있는데, 자연선택으로 인한 진화론을 매우 쉽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논문으로써 가장 먼저 주장했지만, 자신이 다윈의 영항을 받았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오히려 그에게 인정받음을 기뻐했고 8년간의 열정을 다윈에게 헌정한 월리스,

정규 학력이나 연구 경력 없이 20여편의 책과 7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로지 학문적 성과로 영국왕립학회 회원을 역임한 월리스.

그런 월리스가 잊혀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다윈을 기억하듯이 월리스를 기억해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월리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곤충이라고 표현했던 '큰비단제비나비'
월리스가 표본을 입수하고 매우 좋아했던 '큰 극락조'




[말레이제도 본문중]
인도 말레이 군과 오스트로 말레이 군의 커다란 차이가 가장 난데없이 나타나는 곳은 바싹 붙어 있는 발리 섬과 롬복 섬이다. 발리 섬에는 오색조류, 과일지빠귀류, 딱다구리류가 있지만 롬복 섬에는 하나도 없다. 그 대산 발리섬 이서의 모든 섬에는 없는 코카투앵무류, 꿀빨이새류, 무덤새류가 있다. 이곳의 해협은 너비가 24킬로미터 밖에 안 되어 두 시간이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지만 두 곳의 동물상은 유럽과 아메리카만큼이나 다르다. 자와 섬이나 보르네오 섬을 떠나 술라웨시 섬이나 말루쿠 제도로 가면 차이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전자의 숲에는 여러 종류의 원숭이, 야생고양이, 사슴, 사향고양이, 수달이 풍부하며, 수많은 다람쥐 변종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다. 후자의 숲에는 이런 동물이 하나도 없으며, 모든 섬에서 발견되는 멧돼지와, 술라웨시 섬과 말루쿠 제도에서 발견되는 사슴(아마도 최근에 유입되었을 것이다)을 제외하면 쿠스쿠스가 거의 유일한 육상 포유류다. 서쪽 섬들에 가장 풍부한 새는 딱다구리류, 오색조류, 비단날개새류, 과일지빠귀류, 나뭇잎개똥지빠귀류로, 매일같이 관찰되며 이 지역의 중요한 조류학적 특징을 이룬다. 동쪽 섬들에는 이 새들이 전혀 없으며 꿀빨이새류와 장수앵무류가 가장 흔하다. 그래서 자연사학자들은 자신이 새로운 지역에 온 것으로 착각한다. 며칠 만에, 그것도 육지를 한 번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은 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왔다는 사실을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나란히 비교해 보니 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뚜렷이 구별되는 두 민족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크고 빠르고 열정적인 어조, 끊임없는 움직임, 격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활력은 말레이인의 조용하고 차분하고 정적인 태도와 정반대였다.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가지고 사건의 과정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자와 해, 타이 만, 믈라카 해협 전역이 보르네오섬, 수마트라 섬, 자와 섬을 연결하며 아시아 대륙의 드넓은 남부 지역을 이루던 때를 시작으로 첫 번째 지각 운동은 이 땅의 남쪽 끝을 따라 자와 섬 화산들이 활동하면서 자와 해와 순다 해협이 침강하고 이로 인해 자와 섬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었으리라. 자와 섬과 수마트라 섬의 화산대가 점점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더 많은 땅이 가라앉아 처음에는 보르네오 섬이, 뒤이어 수마트라 섬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첫 지각변동의 시대 이후로 별도의 융기와 침강이 몇차례 일어났을 테고, 섬들은 두 번 이상 본토와 합쳐졌다가 분리되었을지도 모른다. 잇따른 동물 이주로 각 지역의 동물상이 달라지고 이는 한 번의 융기나 침강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변칙적 분포로 이어졌을 것이다. 산맥이 넓은 충적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보르네오 섬의 형태는 한때 이곳이 지금보다 훨씬 침강해 있었으며 땅이 점차 융기하면서 퇴적물이 만을 메워 지금의 크기로 커졌음을 시사한다. 수마트라 섬도 북동부 해안을 따라 충적 평야가 형성되면서 크기가 훨씬 커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매우 낮은 문명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완벽한 사회 상태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법도 없고 법정도 없으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각 사람은 이웃의 권리를 사려 깊게 존중하며 그러한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거의 또는 결코 없다. 반면에 영국의 거대한 제조업 체계, 대규모 상업, 북적거리는 도시는 과거의 모든 시기를 절대적으로 능가하는 참상과 범죄를 부추기고 끊임없이 일으킨다. 영국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지만 인구의 20분의 1 가까이가 빈민 구제법상의 빈민이며 13분의 1이 범죄자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적발되지 않은 범죄자와 주로 사적 구제에 기대 살아가는 극빈층을 더하면 영국 국민의 10분의 1이 사실상 빈민이거나 범죄지라고 단언할 수 있다.

모든 생물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많은 생물은 인간과 관계가 없다. 이들의 생명 순환은 인간과 별개로 흘러왔으며 인간의 지적 발달이 진행될 때마다 교란되거나 파괴된다.(극락조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