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찮은 독서

[추천도서]에밀 또는 교육론2(장 자크 루소)


에밀의 교육단계중 네번째 단계인 청년기는 약 15세에서 20세에 이르는 시기를 가르키며, 이 시기는 최초의 출생이후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시기로 표현한다. 그만큼 외적이던 내적이던 삶에서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보는 것이다.

루소는 지금까지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 깨우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살아온 에밀이 이제는 사회와 국가등 외부세계와 그 구성원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고, 사람들과 관계하고 본격적으로 책을읽고 학습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더불어 이 시기에 나타나는 성적인 욕망은 20세 이전까지는 가급적 자극이 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며, 교육자는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밀 또는 교육론 2권) 중간에는 사부아 신부의 신앙고백이 약 100여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데, 주된 내용은 기독교와 카톨릭의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수많은 복잡한 수많은 교리,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특정된 사람들에(종교인) 대한 의문등을 제시하여 이 책이 금서가 되고 루소가 도망자의 신세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지막 부분인 5장에서는 20세부터 결혼전까지를 다루며, 루소가 교육과정중 가장 중요하지만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고 말한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을 하기 전에 준비해하 할 것들, 결혼하는 부부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다루며, 또한 에밀의 배우자인 소피의 교육, 즉 여성들의 교육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성향과 물리적인 차이를 감안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며, 아이때는 충분히 뛰어놀 수 있게, 자신의 의무를 사랑하며, 교육은 실용적인 교육을 해야됨을 강조한다.

짦지 않은 이 책을 읽으며 남는 생각은 비록 시대적 한계로 인하여 특히 여성의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 현실과 맞지않는 부분이 있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철학과 관점은 오늘날 모두 유효하다고 생각되며

특히 오늘날 우리가 전혀 교육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지만 루소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 결혼전 갖추어야 할 자세와 자격 그리고 결혼후에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속박하지 말아야한다는 결혼과 관련된 교육들은 매우 중요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일깨워준다.

마지막으로 에밀과 소피의 만남에서 결혼까지 이어지는 5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매우 훌륭한 소설적인 재미를 주며, 마지막 에밀이 교육자(선생님)에게 감사 표현을 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올바르고 훌륭하게 키워낸 자식으로부터 우리가 감사표현을 받는 듯한, 다른 책에서 느끼기 힘든 색다른 감동을 줄 것이다


[에밀 본문에서]
인생은 짦은데,그 이유는 우리가 얼마 되지 않는 시간밖에 못 살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중에서도 인생을 향유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자면 두 번 태어나는데,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서 또 한번은 살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인류로, 다음에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제 역사를 공부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는 철학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고 오직 역사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될 것이다.

우리는 멸망하고 있는 국민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정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번영을 이루고 있는 국민들의 역사다.

가장 잘 운영되고 있는 정부란 사람들의 입에 가장 덜 오르내리는 정부임을 본다.

역사가는 나에게 어떤 원인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그가 날조한 것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성을 부여하는 비평적 고증이라는 것도 결국 추측하는 기술, 다시 말하면 많은 거짓말들 중에서 진실과 가장 비슷한 거짓말을 골라내는 기술에 불과하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일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는 젊은이가 그러한 일을 겪는 것이 좋다.

여러분의 학생이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에 전념케 하라.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경계해아 하며, 행동하는데 신중하고, 연장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쓸데없이 말하는 것을 삼가고 조심하며, 관계없는 일에는 나서지 않지만, 좋은 일을 하는 데는 대담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는 용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겅험을 통해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책에서 배우지 않도록 하라.

나의 에밀은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았지만, 자신과 동류인 인간들에게 최초로 시선을 돌리면서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게 된다.

이제야말로 독서의 시기며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시기다.

다른 사람이 생각했던 것을 알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만큼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 위한 시간은 잃게 되므로 지식을 많이 획득하면 할수록 그만큼 정신의 활력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남녀는 공통점에서 둘은 평등하고 차이점에서 둘은 서로 우열을 비교할 수 없다. 완전한 여성과 완전한 남성은 서로 생김새가 닮지 않았듯이 정신에서도 닮지 않았다.

여성의 적극적인 힘은 여성이 갖는 매력들에 있다.

그러므로 남녀의 구조적 성격에서 오는 귀결은 더욱 한 남성이 겉보기에는 지배자이지만 사실은 더욱 약한 여성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의 재간이란 자기가 딸들에게 시키는 모든 일들이 어떤 쓸모를 갖는지를 그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실용적인 지식)

여성들에게 한평생 온순함이 필요한 것은 그녀들이 내내 한 남성에게 또는 남성들의 판단에 매여 있기 때문이며, 여성들이 이러한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 절대로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딸들은 언제나 순종해야 하지만 어머니가 늘 엄한 것은 안 된다. 여자 아이를 순하게 만들자고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며, 겸손하게 만든답시고 바보가 되게 해서도 안 된다.

어린 시절을 신에게 기도하면서 보내도록 강요당하는 우리 꼬마 성녀들이, 커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일들로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되지나 않을까, 그리고 시집가서는 처녀 적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최대한 벌충하려 들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여성들에게는 두 길잡이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어떤 능력, 항상 양심을 바로잡아 주고 편견의 오류를 교정해주는 어떤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훈계는 훌륭한 교육 전부를 죽이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가정이란 아내가 가장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가정임이 확실하다.

미모란 소유하고 나면 즉시 퇴색하고 만다. 6주만 지나면 그것은 소유한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만, 미모가 지속되는 한 그 위험은 지속된다.

사람들은 교육론에서는 아이들의 황당무게한 의무들에 관하여 현학적이고 쓸데없는 장광설을 우리에게 늘어놓으면서도, 교육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려운 부분, 말하자면 어린아이에서 어른의 상태로 넘어가는 통로 구실을 하는 위기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결혼과 그 과정)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그릇된 조심성을 피하도록 하자.

행복은 그것을 획득하는 때보다 그것을 소망하는 때가 백배 더 달콤하다. 우리들은 그것을 맛볼 때보다 기다릴 때 그것을 더 잘 향유한다.

결혼하기 전에, 먼저 자네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자네의 인생을 보내고 싶은지, 자네와 자네 가족이 먹을 빵을 확보하기 위해 자네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네.

결혼을 통해 마음은 연결되지만 육체는 전혀 예속되지가 않네. 자네들은 서로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환심을 살 의무는 없네, 두 사람은 저마다 상대방에게만 속할 수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상대방에게 속해야 하네.



[사부아 신부의 신앙고백중에서]
어떤 체계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그것이 다른 체계들보다 더 난점이 많지 않다고 할 때, 그것이 다른 것들보다 우선적으로 채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지상에 단 하나의 종교만이 있어서 그것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벌을 받게 된다고 가정하고, 진실하면서도 그 종교의 확실성에 강한 인상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단 하나라고 있었다면, 이러한 종교의 신은 폭군들 중에서도 가장 불공정하고 잔학한 폭군일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위해 단 하나의 민족만을 선택하고 나머지 인류는 배제하는 그런 신은 인간들에게 공통된 아버지가 아니다.

신이 말씀하셨다고! 그것은 확실히 대단한 말이다. 그런데 신은 누구에게 말했는가?
"신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에 대해 하나도 듣지 못했는가?
"신은 그 말씀을 당신에게 전하는 임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다."
옳거니! 신이 말씀하신 것을 나에게 와서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로구나.
내가 그 말씀을 직접 들었더라면 더 좋을텐데.
그렇다고 해서 신이 더 수고스러울 리도 없었을 것이고, 나는 유혹으롤부터 안전했을 것이다.
"신은 자신이 보낸 사자들의 사명을 명백히 표시함으로써 그 유혹에서 당신을 지켜준다.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적들을 통해서다"
그러면 그 기적들이 어디에 있는가?
"책에."
그렇다면 누가 그 책들을 만들었는가?
"사람들이다."
그러면 누가 그 기적들을 보았는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뭐라고! 여전히 사람들의 정언이 아닌가! 항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전했떤 것을 나에게 전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과 나 사이에 있는가!

결코 논쟁하지 말라, 왜냐하면 사람이란 논쟁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도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