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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독서

[과학 추천도서]비글호 항해기(찰스 다윈)

비글호와 티에라델푸에고섬의 원주민
비글호 항해경로(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젊은 시절의 다윈

비글호는 파나마 운하가 없던 당시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항로인 남아메리카의 해안선과 마젤란 해협일대의 복잡한 지형과 수로에 대한 조사와 위치 측정을 위해 출항하였다. 그리고 인질로 잡아두었던 남아메리카 티에라델푸에고 섬 원주민 세 사람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항해의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1832년 1월 27일 오전 11시, 비글호는 역사에 남을 첫 항해에 올랐고, 처음 계획한 2~3년을 훨씬 넘어서는 5년에서 두 달 하고 25일이 모자란 1836년 10월 2일 다시 영국에 도착하였다.

다윈은 1828년 목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이곳에서 헨슬로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중 1831년 헨슬로 교수로부터 남아메리카로 떠나는 비글호의 함장이 말벗을 해줄 박물학자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비글호 승선은 권유받았고, 외삼촌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누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비글호에 승선할 수 있었다.

함장의 말벗으로 승선하게 된 다윈은 항해초기 함장과 노예제도에 대하여 하선까지 통보할 정도로 큰 말다툼을 벌었으나, 직후 함장에게 사과하고 이후 무난히 5년간의 항해를 마쳤으며, 인디오, 퓨마, 폭풍우, 추위, 벌레등 수 많은 위험을 무릅쓰면서 5년간의 탐사는 진행되었다.

비글호를 타고 5년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탐사를 통해서 다윈은 지질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관찰한 수많은 지질 현상을 목격하고 관찰하면서 지질형성에 필요한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을 확인하고(당시 기독교에서 본 지구의 역사는 6천년~1만년으로 보았다) 산호초의 발생 원인을 알아내었으며, 수많은 동식물들을 관찰 채집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유래, 사회 역사적 의미들을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훗날 인류역사를 한단계 진보시킨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등 다윈의 중요한 저작의 밑바탕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다윈은 피츠로이 함장으로부터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운 라이엘의 지질학원리 1권을 선물받았고 이 책을 지참하고 출항했으며 2권은 비글호 임무수행중 우루과이에서 우편으로 받는다)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다윈은 자신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생물의 진화 가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독특하면서도 아메리키대륙과 유사한 생물들의 관찰과, 핀치새의 부리가 점차 변한다는 조류학자들의 말을 통해 다윈은 생물이 스스로 발달할 수 있음을 확신했고, 멜서스의 인구론을 읽은 뒤,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생물들도 힘이 약하면 먹이를 구하지 못해 멸종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의 기원에서 나온 핵심 논거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당시에는 사진이 없어 화가가 동행하였는데 이 책에는 수 십장의 당시 풍경과 동식물에 대한 그림이 첨부되어 이해를 도우며, 특히 다윈이 거쳐간 수많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동식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읽다보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며 마치 19세기초의 과거로 거슬러 남미와 갈라파고스 타이티섬, 뉴질랜드, 호주를 직접 여행을 다녀온듯한 느낌까지 받게된다.

또한 당시 20대 초반에 불과하던 다윈의 넓고 깊은 지식수준을 알 수 있고, 다윈이 가지고 있던 자연을 사랑하고 동식물을 사랑하며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주요일정
「1831년」
7월 4일 비글호 해양 조사 임무 받음
12월 27일 영국 데본항 출항
「1832년 」
1월 16일 생자고 섬 도착(아프리카)
2월 7일 생자고 섬 떠남
2월 28일 바이아 도착( 브라질)
3월 18일 바이아 떠남
4월 4일 리우데자네이루 도착
7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 떠남
7월 26일 몬테비데오 도착(우루과이)
8월 19일 몬테비데오 떠남
9월 3일 바이아블랑카 도착(아르헨티나)
11월 2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착
11월 28일 티에라델푸에고 섬으로 출발
12월 16일 티에라델푸에고섬 도착
「1833년」
2월 26일 포클랜드 군도로 출발
3월 1일 포클랜드 섬 도착
4월 4일 네그로 강으로 출발
4월 28일 말도나도 도착
8월 17일 바이아블랑카 도착
9월 8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발
10월 2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착
「1834년」
1월 29일 마젤란 해협 도착
티에라델푸에고섬,포클랜드군도,파타고니아
7월 23일 발파라이소 도착(칠레)
칠로에 섬, 산티아고
「1835년」
2월 8일 발디비아 도착
3월 11일 발파라이소 도착(산티아고 외항)
3월 27일 멘도사 도착(아르헨티나)안데스산맥넘음
4월 10일 산티아고 도착
5월 14일 코킴보 도착
7월 29일 리마 도착(페루)
9월 7일 갈라파고스 제도로 출발
9월 15일 갈라파고스 제도 도착(에콰도르)
10월 10일 타이티 섬으로 촐발
11월 15일 타히티 섬 도착
11월 26일 뉴질랜드로 출발
12월 21일 뉴질랜드 도착
12월 20일 오스트레일리아로 출발
「1836년」
1월 12일 시드니 도착
3월 14일 킬링군도로 출발
4월 1일 킬링군도 도착
4월 12일 모리셔스로 출발
4월 29일 모리셔스 도착
5월 9일 남아프리키공화국으로 출발
5월 3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도착
6월 18일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출발
7월 8일 세인트헬레나 섬 도착
7월 14일 어센션섬으로 출발
7월 19일 어센션섬 도착
7월 23일 바이아로 출발(브라질)
8월 1일 바이아 도착
8월 6일 바이아 떠남
9월 4일 생자고 섬 도착
10월 2일 팔머드 정박(영국)
10월 4일 다윈이 집에 도착
11월 17일 비글호 조사 임무 끝냄(5년 136일)


비글호에 탔던 중요한 사람들
피츠로이 함장(1834년 대령으로 승진)
위크햄 해군대위
설리번 해군대위
체퍼스 갑판장
스튜어트 항해사
더비셔 항해사(1832년 4월까지)
스토크스 항해사 겸 관측보조
소렐 갑판장 대리
메코믹 군의관(1832년 4월까지)
바이노 군의관 보조(1832년까지), 군의관 대리(1832년 4월부터)
켄트 군의관 보조(1833년 9월부터)
롤렛 주계관(1834년 6월 사망)
드링 주계관 대리(1834년 6월부터)
다윈 함장말벗-박물학자가 됨
멜러시 사관호보생
존슨 사관후보생-항해사가 됨
킹 사관후보생(1836년 2월까지)
포사이스 사관후보생(1832년 부터)
어스본 갑판장 보조
머스타스 1급 승선지원자(1832년 5월 사망)
메이 목수
얼 화가(1832년 8월까지)
마르텐스 화가(1833년에서 1834년까지)
스테빙 장비 제작자
매슈 선교사(1835년 12월 뉴질랜드에서 하선)
헬리에 사무원(1833년 3월 사망)
코빙턴 다윈의 조수(1833년 5월부터 1836년 9월까지)
제미 버턴 티에라델푸에고 섬 원주민
요크 민스터 티에라델푸에고 섬 원주민
푸에지아 바스켓 티에라델푸에고 섬 원주민

 
 
[비글호 항해기 본문에서]
인디오들의 활동 범위가 아주 넒다는 것을 뜻하지만, 아무리 넓어도 50년 이내에 네그로 강 북쪽으로는 토착 인디오가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싸움이 너무 잔인해 오래 끌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인디오들을 모두 죽이고, 인디오들은 기독교 신자들을 죽인다. 인디오들이 스페인 침입자 앞에서 어떻게 정복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쉬르델의 말에 따르면,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건설되었던 1535년, 주민이 2,000~3,000명 정도의 인디오 마을이 몇 개나 있었다고 한다. 팔코너의 시절(1750년)에도 인디오들은 룩산과 아레코의 아레시페까지 침입했지만, 지금은 살라도 강 건너로 밀려났다. 어떤 종족은 전체가 몰살당했을 뿐 아니라, 살아남은 인디오들도 더 야만스럽게 되어, 동네에서 살면서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지 않고, 집도 없이 일정하게 하는 일도 없이 넓은 평원을 돌아다닌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무엇이든지 크게 일어난다. 라플라타 강에서 티에라델푸에고 섬까지 1,200마일 되는 땅은 현재 살아 있는 조개가 나타난 이후에 융기했다(파타고니아에서는 300~400피트나 융기했다). 융기한 표면에 오래도록 남아 있어 풍화한 조개껍데기들은 아직까지 일부분은 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융기하는 중 적어도 여덟 번에 걸친 긴 휴지기가 있었다. 그동안 바다는 육지를 심하게 침식해 순서대로 긴 절벽을 만들었다. 절벽을 층계처럼 차례차례 솟아오르면서 다른 평원과 구별되었다. 융기 운동의 양과 휴지기 동안 바다의 침식력은 균형을 이루며 긴 해안선에 두루 작용한 것 같다. 층계 같은 평원들이 먼 곳의 거의 같은 높이의 다른 평원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가장 낮은 평원은 90피트이며, 해안 가까운 곳에서 내가 올라갔던 가장 높은 평원이 950피트였다. 이곳에는 융기한 흔적이 자갈로 덮인 판판한 모양으로만 남아있다. 산타크루스 강의 상부 평원 코르디에라 기슭에는 3,000피트로 높아진다. 현재 살아 있는 조개가 나온 이휴 파타고니아가 300피트에서 400피트 정도 높아졌다고 앞서 말했다. 빙하가 산타크루스 상부 평완으로 커다란 바위들을 운반했을 시기, 그때 융기 양이 적어도 1,500피트는 된다는 말을 덧붙이겠다. 파타고니아가 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E. 포브스 교수의 연구를 보면 산훌리앙 포구와 산타크루스에서 발견된 멸종된 3기 조개는 30~250피트 사이보다 더 깊은 바다 속에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것들은 두께가 800~1,000피트 되는 해저 지층으로 덮여 있다. 그러므로 한 때 조개가 살았던 바다의 지층이 수백 피트 가라앉은 후 그 위에 지층들이 쌓이게 된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단순하게 구성된 해안이 이러한 지질 변화의 역사를 보여주다니!

지질학에서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시간에, 그렇게 넓은 지역이 침강했거나 융기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융기 운동이나 침강 운동은 거의 같은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의 봉우리도 수면 위로 솟아 있지 않은 채 환초들만 흩어져 있는 곳에 엄청난 양으로 침강이 일어났음은 틀림없다. 게다가 침강이 쉬지 않고 계속되든, 산호가 수면 가까이 올라올 수 있을 만큼 긴 시간 여유를 갖고 쉬엄쉬엄 침강하든, 침강은 반드시 엄청나게 느린 것은 틀림없다. 이 결론은 아마도 산호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연구하면서 유추한 사항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또 그렇게 하지 않고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을까를 상상하기 힘든 결론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전에 높은 섬들로 된 큰 제도가 있었다는 가능성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 그 제도는 이제 지금은 간신히 물밖에 둥글게 나타난 산호 바위들이 있는 곳에, 대양 한가운데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다. 산호초를 만드는 산호들은 지하에서 일으키는 지면의 오르내림에 관한 놀라운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보초 하나하나에서 욱지가 침강했다는 증거를 보고, 환초 하나하나에서 지금은 사라진 섬의 기념물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1만 년을 살면서 지나간 변화를 기록하는 지질학자처럼, 지구 표면이 갈라지고 땅과 육지가 뒤바뀐 거대한 체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는다.

왜 이 작은 땅은 최근에 대양으로 덮였고, 현무암질 용암으로 되었으며, 아메리카와 대륙과 지질 특징이 다르면서 기묘한 기후 아래에 놓여 있는가? 왜 토착 생물들은 대륙에 있는 생물들과 종과 수의 비율이 다른가? 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가? 왜 아메라카에 있는 생물들처럼 창조되었는가? 케이프 데 베르데 제도(아프리카)의 섬들은 지형면에서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메리카 서해안을 닮은 것보다 훨씬 더 갈라파고스 제도를 닮았다. 그런데도 두 제도의 토착 생물은 완전히 달라서, 케이프 데 베르데 제도의 토착 생물에서는 아프리카의 특색이 나타나는 반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토착 생물에서는 아메리카의 특색이 나타난다.

앞날이 바뀔 희망마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가! 당신의 부인과 어린 자식들-신은 노예들에게도 자기 부인과 자기 아이들을 주셨다-을 당신에게서 빼았아 짐승처럼 가장 많은 값을 써낸 응찰자에게 팔리는 일이 당신 자신에게 일어난다고 상상해보라?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이런 행위들을 저지르고 변명한다! 우리 영국 사람들과 우리의 후손인 미국 사람들이 자유를 자랑스럽게 외치면서도 지금까지 이러한 죄를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가 끓고 심장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