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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독서

[제2차 세계대전 추천도서]2차세계대전의 시작'중일전쟁'(권성욱)

"일본군은 베이핑과 랑팡에서의 충돌을 구실로 삼아 28일 정오까지 베이핑 교외에 주둔한 모든 중국군은 융딩강 서쪽으로 철수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총공격을 시작하겠다고 엄포하였다. 그러나 지신들의 기한을 28일 정오로 정해놓고도 정작 일본군의 공격은 28일 오전 8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식의 비열한 기습은 상대의 주의를 끌어 방심시킨 다음 공격하는 일본군의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일본군은 난징 교외에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그 앞에 포로들을 줄지어 세워 놓은 채 기관총을 난사하였다. 일본도로 한사람씩 차례로 참수한 다음 목을 모아놓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또한 부녀자들을 강간한 후 참수하거나 불구덩이에 집어던졌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만행이 난징에서 저질러젔다."


"트루먼은 마셜에게 38도선 안을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8월 13일 합참은 40도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태평양전구 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는 일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한반도나 중국은 부차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 때문에 병력과 물자가 분산되어 자신의 일본점령 임무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하였다. 결국 3부 정책조정위원회는 미군의 능력을 고려할 때 38도선이 적정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를 미소의 분할선으로 정하는 '일반명령 제1호'를 수립하였다. 나중에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이 되는 딘 러스크 대령은 테이블에 놓인 지도에서 한반도의 허리 부분에 연필로 선을 죽 그었다. 그렇게 한반도의 운명을 결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일본을 아시아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했던 미국은 일본의 협조가 필요했다. 따라서 일분인들의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천황 히로히토에게 면죄부를 내렸고 황족 불기소 방침에 따라 난징 대학살을 주도했던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친왕을 비롯한 황족들 역시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 악명높은 세균전 부대로 온갖 반인륜적인 인체 실험을 자행하고 중국 전선에서 생화학전을 수행했던 731부대에 대해서도 미국은 생체연구 자료를 넘겨받고 협력하는 대가로 이시이 시로 중장과 그의 참모들은 모두 석방하고 불문에 붙였다."
[중일전쟁 문에서]



1937년 7월 일본이 꾸며낸 류거우차오 사건으로 중일 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상 1931년 일본군이 괴뢰정부를 내서워 점령하고 사실상 통치하게 된 만주사변이 중일전쟁으로 가는 시발점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중일전쟁은 같은시기 유럽의 전쟁만큼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 2천5백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사망하였고 약 70만명의 일본군인이 사망하였으며 중국 일본 미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 버마 인도네시아까지 동아시아의 대부분이 휩쓸린 태평양 전쟁의 출발점이며 또 다른 세계대전의 중심이었다.

중일전쟁은 현격한 전투력 차이로 인하여 대부분의 전투에서 일본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진행되지만, 일본군은 철도를 중심으로 중국의 많은 도시들을 장악하였으나 철도를 벗어난 지역으로 점령지를 확장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거대한 대륙을 차지한 중국이 소모전을 치르면서 버티고, 반면에 버마 부근과 진주만까지 공격하여 무분별하게 전선 확장되며 일본군은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며, 전투력에서 일본과 큰 격차를 보인 미국의 참전으로 인하여 일본은 패망하게 된다. 마치 나치 독일이 영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양면전쟁을 펼친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결과로써 분단된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에 의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반으로 갈라져 현재까지 80년 가까이 남북이 대립과 갈등을 겪게 되는 운명을 맡게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이며, 가는곳마다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하여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일본은 오히려 미국의 보호아래 재건되었다.

또한 전쟁의 당사자이면서 8년간의 2500백만명의 사망자를 내며 어럽게 국가를 지켜낸 중국은 3년간의 내전(국공내전)에 돌입하면서 또다시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범국이었던 일본군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마침내 중국과 타이완으로 쪼개진 두개의 중국 정부도 협상에서의 우위를 오히려 일본에게 빼앗기고 국제사회의 고립을 우려한 나머지 스스로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까지 포기하게 된다.

이 책은 1931년 만주 사변부터 일본의 패망까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고 그 이후의 국공내전과 전후 중일관계까지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의 진행과정과 주요전투, 그리고 전쟁을 이끌었던 장제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군사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닌 저자의 수준 높은 저작을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