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는 냉전시기인 1973년부터 1977년까지 미국의 국무장관(외교장관)이었고, 미국의 국무장관 중에서도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는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외교를 이끌었고 그 기간중 베트남전을 종결하고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끌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부분도 있지만,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민주정부에 대한 구데타를 지원하여 독재정권이 수립되는데 기여했고, 6만여명 이상이 사망한 남미 최대의 정치탄압인 콘도르작전에 참여하여 독재 친미정권의 수립을 적극 지원한 전력은 그가 비난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한 그가 93세인 2016년에 세계질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국가가 국제 및 국내정치의 기본단위가 되고,
주권 국가들은 국익과 국력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에 의해 움직이며,
다른 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하고 서로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전반적인 세력 균형을 통해 서로의 야심을 억제하고,
서로 다른 사회들이 공식적인 기구를 이용하여 의미 있는 상호 이익을 위해 공동의 목표하에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체제
위의 세계질서 개념은 현존하는 세계질서의 기초로써 유일하게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베스트팔렌 원칙으로써, 참혹했던 30년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진 유럽국가들에 의해 체결된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 기원을 둔다.
저자는 이러한 세계질서 즉 베스트팔렌 원칙들이 세계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다고 말한다.
유럽은 EU라는 조직, 즉 주권 공유라는 개념을 통해 그 체계를 초월하고 있고,
중동 지역에서는 지하디스트들이 이슬람 세계 혁명을 추구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대안의 질서 개념들을 상기시키고 있고,
미국은 베스트팔렌 세계질서에 대해 옹호와 혹평을 반복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유롭고 공정하고 평화로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인정하는 정당성을 갖춘 세계질서가 힘에 의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각 국가는 민주주의 제도와 자유선거를 채택하고,
각자의 존엄성과 참여 통치 방식을 지지하며,
합의된 규칙에 따라 국제 협력을 도모하는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미국은 세계 질서를 성취하기 위해 방향 감각을 유지하고 과단성 있는 대처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민주주의 제도와 자유선거를 채택한 국가는 필연적으로 평화를 지향하고 세계질서에 협조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베스트팔렌 원칙을 유지 하며 세력 균형을 통한 세계 질서 유지 라는 이 책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미국이 전 세계인의 자유와 평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선택받은 나라이며, 몸소 희생하며 실천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의 되는 한' 에서라는 전제조건이 붙을 때에만 성립하는 듯하다
저자 또한 남미에서 친미 독재정권을 세우기 위해 민주정권에 대한 구데타나, 반대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을 도와준 전력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는 상반된다.
하지만 이미 사망한 저자를 비난하지는 않겠다
아마도 본인의 과거 행적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거나 이미 남몰래 통렬한 반성을 했을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이 책은 미국의 외교방향과 그들이 내 세우는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유럽,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인도, 일본, 중국이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교 대상국임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보여준 키신저의 다양한 역사지식만큼은 존중받아야 하며 나라의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정도 전문성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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